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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일자봉으로도 불리는 문성산을 병풍처럼 두른 매천황현생가에서는 한말삼재로 일컬어지는 매천 황현과 불멸의 천재 소설가 김승옥, 불세출의 걸출한 두 문인이 탄생했다.
1855년 이곳에서 태어난 매천 황현이 32세까지 살았고, 그 후 김승옥이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으며 1989년까지 이 가옥을 소유했다.
매천 황현은 어려서부터 시와 문장에 뛰어난 신동으로 20대에 만 권의 책을 읽을 만큼 지독한 독서광이었으며 이건창, 김택영 등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 웅숭깊게 교류했다.
매천은 무려 2,500여 수의 시를 남긴 문장가이고 역사를 꼼꼼히 기록한 역사가이며 경술국치에 죽음으로 항거한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추앙받는다.
대표 기록물인 「매천야록」에는 대원군 집정(1864년)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 위정자의 비리, 일제의 침략상, 민족의 저항 등 47년간의 역사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매천야록」은 「오하기문」, 「절명시첩」, 「유묵․자료첩」, 「문방구류」, 「생활유물」 등과 함께 3.1운동 100주년이 되던 2019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정부는 고인의 충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광양시는 매천황현생가 복원, 역사공원 조성, 매천동상 건립 등 매천의 숭고한 우국 정신을 기리고 있다.
1941년 오사카에서 출생한 소설가 김승옥은 1945년 부모님과 함께 귀국해 당시 그의 조부 김수행이 소유(1910년 매입)했던 매천황현생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승옥은 ‘생명연습’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후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문학상을 최연소 수상하는 등 한국문학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특히,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그는‘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제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광양 출신 소설가 이균영과도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김승옥의 부친은 여순사건 때 사망하고, 조부 김수행으로부터 매천황현생가를 상속받은 김승옥은 1989년까지 이 가옥을 소유했다.
해마다 봄이면 매천황현생가 앞마당에는 백목련과 자목련 두 그루가 나란히 서서 단아하고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차례로 터뜨린다.
나무 위에 피는 연꽃을 뜻하는 목련(木蓮)은 붓처럼 생긴 겨울눈 때문에 목필화(木筆花)라고도 불리는데 마치 이곳에서 탄생한 두 문장가를 상징하는 듯하다.
이현주 광양시 관광과장은 “사람은 장소에 의해 탄생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백운산 자락 문성산의 정기를 품은 매천황현생가에서는 근현대 걸출한 두 문인이 탄생했다”면서 “문기(文氣)가 면면히 흐르는 매천황현생가에서 장소가 갖는 정체성을 찾아보고 문학적 감수성을 가득 충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종수 기자 0801thebetter@naver.com